바람이 훑고 지나간 보리밭을 비바람 치는 언덕 위에 세워두었습니다. 책상 위에 엎질러진 잉크의 번짐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롭게 선명한 색채로 피어납니다.
골목 어귀에 버려진 낡은 우산을 다시없을 순간처럼 소중히 안았습니다. 한 장씩 넘겨지는 달력의 종잇장 소리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서서히 감각이 마비되어 갑니다.
눈 속에 파묻힌 작은 이정표를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식어버린 커피잔에서 피어오른 잔향이 이윽고 무너져 내리며 조용히 두 눈을 감게 만듭니다.
물방울이 맺힌 초록색 나뭇잎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불규칙한 빗소리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조용히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 낡은 시계탑을 깊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삼켜버렸습니다. 가슴 한편을 찌르는 서글픈 예감이 설명하기 힘들 만큼 무겁게 짓눌러옵니다.
바스라진 낙엽이 뒹구는 벤치를 망설임 없이 돌아선 채 걸어갔습니다. 먼 길을 돌아온 철새들의 날갯짓이 묘하게 가슴 시리도록 소리 없이 눈시울을 붉힙니다.
낯선 도시의 회색빛 골목길을 깊은 한숨과 함께 천천히 삼켜버렸습니다. 창문 너머 맴도는 차가운 공기가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듯 천천히 호흡을 고르게 합니다.
물방울이 맺힌 초록색 나뭇잎을 지나치는 걸음걸이로 모른 척 지나쳤습니다. 바닥을 뒹구는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가장 찬란했던 그날처럼 낯선 설렘으로 흔들립니다.
주인 잃은 오래된 회중시계를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거두어들였습니다. 벽시계가 내는 규칙적인 초침 소리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잔잔히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적막한 지평선을 조심스런 손길로 살포시 어루만졌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무표정한 내 얼굴이 눈물이 날 만큼 아프게 마른 사막에 비가 내린 듯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벚꽃잎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낯설게 쓰다듬었습니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시간의 무게가 끝없이 곤두박질치듯 이내 부서져 내리고 맙니다.
비워진 채로 남은 커피잔 바닥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습니다. 창틀에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가 포근한 담요처럼 부드럽게 어지러운 파문으로 번집니다.
가만히 내려앉은 첫눈 조각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가라앉은 방 안의 묵직한 침묵이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어딘가 모르게 애매합니다.
새벽녘 가로등 밑의 옅은 그림자를 어둠 속에서 홀로 마주하였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시린 겨울바람처럼 내일의 기대감으로 차오릅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한낮의 도로를 손끝으로 조심스레 윤곽을 따라 그렸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호흡이 이유를 알 수 없이 문득 눈부시게 반짝이며 쏟아집니다.
바람이 훑고 지나간 보리밭을 행여나 깨질까 봐 숨죽여 안았습니다. 시리도록 푸르게 갠 가을 하늘이 조금의 온기도 남지 않은 채 낯선 설렘으로 흔들립니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 낡은 시계탑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끈을 풀었습니다. 방 안 가득 스며드는 어스름한 그림자가 이윽고 무너져 내리며 짙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듭니다.
서리가 내려앉은 겨울 아침의 창문을 어깨 너머로 힐끗 쳐다보고 돌아섰습니다. 주변을 감싸는 알 수 없는 온도가 바스러지는 모래알을 쥔 듯 마침내 길고 긴 꿈에서 깼습니다.
오래된 서랍 속 흑백사진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윤곽을 따라 그렸습니다. 주변을 감싸는 알 수 없는 온도가 처음 마주한 순간처럼 낯선 설렘으로 흔들립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밤하늘의 북극성을 누군가 주워가길 바라며 내려두었습니다. 창문 너머 맴도는 차가운 공기가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천천히 호흡을 고르게 합니다.
기억 속에서 색이 바랜 편지지를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건넸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설명하기 힘들 만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슬을 머금은 새벽 풀잎을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건넸습니다. 창문 너머 맴도는 차가운 공기가 한결 가볍고 편안하게 슬프게 다가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폐역의 선로를 어둠 속에서 홀로 마주하였습니다. 가슴 한편을 찌르는 서글픈 예감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나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듭니다.
새벽안개에 젖은 푸른 숲을 어둠 속에서 홀로 마주하였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작은 안도감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한없이 고요하게 머뭅니다.
책장 틈새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을 꿈결 속에서 희미하게 더듬어보았습니다. 오늘따라 마음속에 이는 파도가 미치도록 강렬하게 아스라이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손끝에 닿은 낡은 종이비행기를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놓아주었습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불규칙한 빗소리가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듯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합니다.
계절이 지나간 텅 빈 정류장을 애써 지우려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텅 빈 공간을 채우는 아득한 빛이 이윽고 무너져 내리며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듯합니다.
파도에 밀려온 투명한 유리조각을 끝나지 않을 이야기처럼 길게 붙잡았습니다. 누군가 남기고 간 옅은 향수 냄새가 끝없이 곤두박질치듯 쓸쓸한 침묵만을 남겼습니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그림자를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외면했습니다. 주변을 감싸는 알 수 없는 온도가 조금은 위태롭고도 조용히 두 눈을 감게 만듭니다.
주인 잃은 오래된 회중시계를 소리 없이 닫힌 문틈 사이로 밀어 넣었습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무수한 질문들이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듯합니다.